12.9 (토요일)
성경필사/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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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설교
“ 내외의 적 ” 느헤미야 4:1-14
2023.12.8.금요일.새벽기도
오늘 분몬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각자 믿음과 능력의 분량에 맞게 예루살렘 성벽을 중수하던 중에 일어난 반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반대에 앞장선 사람은 우선 산발랏이었습니다. 산발랏은 사마리아의 총독이었습니다. 느헤미야가 유대 땅의 총독으로 부임했을 때 북쪽 사마리아 지역에는 산발랏이 그 지역 사람들을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산발랏은 예루살렘 성벽이 재건되면 자신의 입지가 좁아질 것이 두려웠을 것입니다. 아무래도 유대 땅의 중심은 사마리아가 아니라 예루살렘이었습니다.
지금은 성벽이 무너졌고 성문이 불탔으며 백성들은 영적으로 잠들어 있기 때문에 예루살렘이 이빨 빠진 호랑이처럼 아무 영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벽이 재건되고 예루살렘 성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회복하면 사마리아는 다시 유대 땅의 변방이 되고 산발랏의 권력도 약해질 수 있습니다.
산발랏은 그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산발랏은 그의 두려움을 비웃음과 협박이라는 가면으로 가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슨 일을 하겠냐며 비웃었고, 성벽 재건은 그들을 지배하는 바벨론 제국의 왕권에 대한 도전이라고 협박을 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산발랏의 비웃음은 그의 두려움을 감추기 위한 가면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것입니다. 또한 왕에게 충성하는 신하인체 하면서 왕권에 도전하지 말라고 협박하는 산발랏이 사실은 자기 권력을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 그런 말을 한다는 사실도 알았으리라 봅니다.
느헤미야는 바벨론의 왕궁에서 수많은 암투와 경쟁에서 살아남은 사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겉으로 드러난 말과 행동이 아니라 그 속에 숨은 저의를 간파하는 능력을 키워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느헤미야는 산발랏이 하는 말과 행동 속에 숨겨진 진심이 무엇인지 모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구태여 산발랏의 속내를 드러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산발랏이 숨기고 있는 두려움과 더러운 권력욕을 만천하게 공개해서 수치를 당하게 하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일러바칩니다. 본문 4절은 그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우리가 업신여김을 당한다고 하나님께 일러바쳤습니다. 산발랏과 도비야 같은 사람이 하나님의 백성을 욕하고 있다고 고자질합니다. 그러면서 그들의 악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청합니다.
그러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본문 6절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에 우리가 성을 건축하여 전부가 연결되고 높이가 절반에 이르렀으니 이는 백성이 마음 들여 일을 하였음이니라(느4:6)”
하나님께서는 느헤미야의 바람대로 산발랏과 도비야를 벌하시는 대신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가 되게 하셨습니다.
성벽 재건의 어느 한 부분도 빠지지 않고 모두가 동참하니 전부가 연결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높이가 이미 절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는 백성들이 마음을 들여 이 일에 매달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산발랏과 도비야가 벌을 받아서 다시는 비웃고 협박하지 못하게 되는 일보다 훨씬 좋은 응답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한 마음으로 일을 이루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이 응답이 훨씬 더 좋은 이유는 분명합니다. 만약 산발랏과 도비야가 자신들의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기는 하되,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혼이 여전히 잠들어서 아무도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때는 이스라엘 백성을 혼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느헤미야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은 형제이며 동포이며 가족과 같습니다. 그러니 아무리 성벽 재건에 동참하지 않는 사태가 일어나더라도 산발랏이나 도비야 같은 사람에게 하듯 저주를 퍼부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산발랏이 벌을 받는 일보다 더 좋은 일은 산발랏의 악행으로 인하여 믿음의 형제자매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단결하게 되는 일입니다.
이러한 말씀을 생각하면서 저는 최근에 전도할 때마다 방해를 받았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우리가 전도하는 현장에서 핸드폰을 들고 이곳저곳에 신고를 하시던 그분은 말하자면 산발랏이나 도비야와 같은 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분들 때문에 신고를 받은 구청직원과 파출소 순경과 학교의 선생님에게 저희가 전도하는 일에 대해서 설명하고 양해를 구해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두고 생각하니 이러한 일들이 결국에는 놀라운 은혜로 바뀌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산발랏과 도비야의 방해가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로 뭉치게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전국시대를 끝내고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임진왜란을 일으켰습니다. 그 이유는 이제 막 통일이 되었지만 여전히 분열의 가능성이 있는 일본을 하나로 뭉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일을 위해서 이용한 대상이 조선이었다는 점에서 우리는 화가 날 일이기는 하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라는 사람이 대단하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외부의 적이 있으면 내부는 하나로 뭉치게 됩니다. 도요토미는 이 일을 꾸몄기에 양국의 백성들이 죽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보면 외부의 적인 산발랏과 도비야로 인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무도 죽지 않고 오히려 생생하게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앞으로 우리가 전도하면서 겪는 비난과 방해를 이상히 여기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한 비난과 방해는 믿음의 형제자매를 더욱 하나로 묶어주는 끈 역할을 하리라고 소망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의 나머지 부분을 보면 외부의 적이 내부의 분열을 가져오기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본문 10절입니다.
“유다 사람들은 이르기를 흙무더기가 아직도 많거늘 짐을 나르는 자의 힘이 다 빠졌으니 우리가 성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하고(느4:10)”
유다 지파에서 부정적인 볼멘소리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들은 산발랏과 도비야의 비웃음과 협박에 질겁한 자신과, 또한 게으름과 불순종의 죄를 감추기 위해서 아직도 흙무더기가 많은데 힘이 다 빠졌다고 핑계를 댔습니다.
유다 지파는 사실 이런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지난 번 말씀에서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위해서 36km나 떨어진 곳에서 달려온 여리고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성벽 재건과 큰 관련이 없는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벽이 재건되면 그들은 자기 자리로 돌아갈 것인데 그곳 여리고는 성이 세워질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가나안 정복에서 가장 먼저 성이 무너진 여리고 땅에 누군가 다시 성을 세우면 반드시 저주를 받게 되리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리고 사람들은 자신들의 성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예루살렘의 평화를 위해서 내일처럼 성벽을 쌓는 일에 자원하고 나선 것입니다.
그런데 유다 지파는 어떻습니까? 유다 지파의 근거지는 헤브론입니다. 헤브론은 곧 예루살렘입니다. 유다 지파는 자기들이 거주할 성벽을 쌓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뭐라고 말합니까? 힘이 다 빠져서 성벽 재건은 물 건너갔다고 합니다. 뭐 이런 사람들이 다 있나 싶습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저는 우리가 유다 지파 같은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하면 그동안은 가만히 있던 외부의 적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방해하고, 비웃고 협박합니다. 그들은 사실 위협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오늘 말씀에서 볼 수 있듯 그들을 통해서 믿음의 형제자매들이 하나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내부이 분열입니다. 조금 어려운 일이 생기자 가장 이득을 볼 유다 지파가 부정적인 말을 하고, 불순종을 마음을 품었습니다. 이처럼 교회에서 가장 믿을만한 사람이 어려운 일이 닥치면 가장 먼저 불만을 제기하고, 비난을 쏟을 수 있습니다.
청년부를 담당하던 전도사 때의 일입니다. 청년들을 위한 전도 축제를 준비했는데 막상 전도된 청년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청년부 부장을 맡으셨던 장로님이 막 화를 내시면서 일을 이따위로 하냐고 소리를 치셨습니다. 그때는 제가 경험이 적으로 적잖이 놀랐습니다.
우리가 전도를 하다 보면 열매를 많이 거둘 때도 있고, 전혀 열매를 거두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열매를 거두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 우리는 그저 헌신할 뿐입니다. 아무런 시도도 하지 않으면 실패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패하지 않은 그 삶보다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무언가 도전하는 일이 훨씬 좋습니다. 달란트는 손수건에 싸두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만약 무언가를 하려다가 달란트에 손실이 왔더라도 그는 주님께 책망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이 일에 대해서 어떻게 했는지 본문 14절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가 돌아본 후에 일어나서 귀족들과 민장들과 남은 백성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너희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하여 싸우라 하였느니라(느4:14)”
느헤미야는 철없는 유다 지파를 책망하지 않고 오히려 용기를 북돋아 주었습니다.
젊은 시절 저를 공격한 장로님께 저는 한 마디도 못하고 그저 섭섭한 마음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미리 알았더라면 느헤미야처럼 담대히 말할 수 있었겠다 싶습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 찾아오는 적들과 또는 같은 길을 걷는 사람의 갑작스러운 돌발 행동을 두려워하지 마시고 그저 하나님께 아뢰고 또한 성숙하게 다스리는 느헤미야처럼 행동함으로써 놀라운 일을 이루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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