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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5.27 (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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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월)부터 매주 월~토 오전9시에

1층 교회식당에서

'메시지 성경'으로 함께 읽습니다.

누구든 참석 가능합니다 - 커피 제공  

오늘의 설교

우리와 함께 계시는 삼위일체

로마서 8:9-11

2024.5.26 (주일) 주일예배

‘여러분’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가수며 작곡가였던 윤항기 목사님이 동생 윤복희를 통해서 세상에 발표한 노래인데요. 이 노래로 윤복희 씨는 제3회 국제가요제에서 대상을 수상했다고 합니다.

지금도 많은 후배 가수들이 굵직굵직한 무대에 설 때면 이 노래를 애창하고는 합니다. 그만큼 이 노래를 듣는 사람들을 깊은 감동을 받고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그 가사가 이렇습니다. 

 

네가 만약 괴로울 때면 내가 위로해줄께

네가 만약 서러울 때면 내가 눈물이 되리

어두운 밤 험한 길 걸을 때

내가 내가 내가 너의 등불이 되리

허전하고 쓸쓸할 때 내가 너의 벗 되리라

나는 너의 영원한 형제야

나는 너의 친구야

나는 너의 영원한 노래야

나는 나는 나는 나는 너의 기쁨이야

 

이 노래는 오빠 윤항기가 동생을 위해 쓴 노래라고 합니다. 당시에 윤복희 씨는 두 번이나 이혼을 한 상태로 마음에 큰 상처를 입고 있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도대체 누굴 믿고, 누굴 의지하며 살아야 하나? 막막하고 쓸쓸한 미래를 내다보며 절망 중에 있던 동생에게 오빠 윤항기 씨는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알려 주고자 이 노래를 준 것입니다. 

우리가 만약 괴로운 인생길을 걸어가고, 서러운 일을 당하더라도, 어두운 밤길처럼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라도, 주님은 우리의 위로가 되시고, 등불이 되시고, 벗이 되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이 노래가 가리키는 대상이 주님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당연히 큰 감동을 받지만 믿지 않는 분들도 위로와 따스한 은혜를 맛보기라도 받기에 눈물짓고 행복한 마음이 되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삼위일체’ 주일입니다. 오늘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다시 한 번 기억하라고 제정된 날이라고 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데 그것도 세 분 하나님께서 함께 우리와 함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그것도 삼중으로 겹겹이 둘러싸고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마치 아기가 태어나면 아이의 아버지나 어머니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할아버지 할머니와 삼촌과 고모이모가 아이를 빙 둘러싸고 함께 축복하고 아이가 자라서 성인이 될 때까지 계속 사랑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도 그러십니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과 성령 하나님이 우리를 함께 둘러싸고 빈틈없이 돌보시고 필요한 것들을 채워주십니다. 

오늘 본문은 세 구절인데 각 절이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첫 번째 구절은 성부 하나님을 기록하고, 두 번째 구절은 성자 예수님, 그리고 마지막 구절은 성령 하나님을 기록한다고 보시면 한결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우선 본문 9절은 성부 하나님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로마서8:9)”

 

하나님의 영이 우리 속에 들어와 있다면 우리가 육신에 있지 않고 영에 있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잠시 중력에 대응하는 몸을 입고 있습니다. 마치 달에 간 우주비행사가 지구의 1/6에 불과한 달의 중력에 대응하기 위해서 우주복을 입듯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그 환경에 맞는 몸을 주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궁극적으로 이 지구 위에서만 살아갈 존재가 아닙니다. 

지옥과 천국은 그러한 사실을 말해줍니다.

지옥이라는 말은 지하에 있는 감옥이라는 말입니다. 영에 속하지 않는 사람은 그가 육신에 의지하던 대로 계속 갇힌 삶, 제한 된 삶을 살게 된다는 뜻이 아닐까요?

천국은 바울에 의하면 삼층 천에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우주라고 부르는 저 하늘 위에 또 다른 차원의 하늘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천국은 그 위의 또 다른 하늘에 건설된 나라인 것입니다. 그러면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이 어떻게 그 하늘에서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가 영적인 존재여야만 합니다. 우리가 아는 이 우주로 나가서 새로운 별에 발을 디디려고 해도 이 지구에 적응된 몸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보여주신 몸은 어떻습니까? 그 몸은 지구라는 환경은 물론이고 그 어떤 제약도 받지 않는 몸이셨습니다. 제자들이 꽁꽁 숨어 있는 그 벽을 뚫지도 않고 들어오셨고, 몸이되 지상의 그 어떤 인간이 갖지 못한 새로운 몸이셨습니다. 주님은 그 몸으로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만약 예수님의 몸이 우리와 같은 몸이라면 주님은 저 하늘로 올라가면서 추위로 죽으시거나 공기가 희박하여 죽으셨을 것입니다. 그런 일이 없지요? 그것은 곧 우리 주님이 저 천국은 물론이고 우리가 아는 우주 공간의 그 어떤 별의 환경에도 제약을 받지 않는 몸이 되셨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그 일의 전단계가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들어오시는 것에 있습니다. 예수의 영을 받은 사람은 곧 아버지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이러한 것들을 믿는 사람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잠시 어렵다고 좌절하거나, 힘들다고 불평하는 그 일들이 사실은 대단한 것도 아니라고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들어와 계시다니까요? 조금 덥다고 불평하고, 조금 춥다고 힘들어하는 사람은 표면 온도가 470도나 되는 금성을 여행할 날을 생각해 보거나 영하 148도인 목성을 여행할 때를 상상해 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지구는 아무리 더워도 50도 정도랍니다. 아무리 추워도 영하 30도 정도랍니다. 

우리는 이 지구에서 한 100년 살다가 하나님의 영을 받고 예수님의 몸처럼 부활해서 온 우주에 펼쳐진 아름다운 별들을 여행하고 본향인 천국으로 돌아가서 아버지께 말씀드릴 날이 올 것입니다.

아버지, 목성에 갔더니 세상에 얼마나 차갑게 아름다운지 깜짝 놀랐습니다. 이번에 태양계를 여행 갔다 왔는데 다음에는 은하계를 좀 다녀오겠습니다.

 

본문 10절을 보겠습니다.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로마서8:10)”

 

이 말씀을 보면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셔도 안 되는 것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몸은 안 돼요.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이미 죽은 몸이랍니다. 

구구팔팔일이삼사라는 노래가 있더라구요. 구십구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하루이틀사흘만 고생하다가 하늘나라 가자는 노래입니다. 물론 너무 좋습니다. 우리들이 다 그렇게 되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결국은 죽는다는 거잖아요? 몸은 태어나면서부터 이지 죽은 몸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뱃속에서 죽은 아이나 99세로 죽은 노인이나 결국 영원한 시간이라는 기준에서 보면 똑같습니다. 100년 살다가 죽으나 하루를 살다가 죽으나 중요한 것은 그 몸 안에 예수의 영이 들어와 계시냐 하는 것입니다.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지만 예수의 영이 함께 하신다면 우리의 영은 우리를 죄인이라 하지 않고 아들딸이라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생명이 살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본문 11절입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로마서8:11)”

 

자,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 대신 죽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죽은 몸을 다시 살리신 분이 있습니다. 그분이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에서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시면 이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이시고,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분은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이미 에스겔 선지자는 환상 중에 마른 뼈들이 살아나는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그때 성령께서 바람처럼 그들 위에 거니시니 뼈들이 자리를 잡고, 살과 가죽이 덮이면서 젊고 패기 있는 몸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그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싸우는 군대가 됩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살리신 성령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면 우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말씀합니다. 

 

예전에는 남자로 태어난 것 자체가 벼슬이라, 집에서는 어머니나 아내나 딸이 살림살이를 하는 동안에 그저 누워 있거나 술이나 마신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점점 그런 남자가 없지요. 남자도 살림살이를 하는 시대가 된지 오랩니다. 그래서 살림살이를 잘하는 남자는 하나도 부끄러울 것이 없고, 요리를 잘하는 남자는 인기남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살림이라는 말은 ‘무언가 죽어 있던 것을 살린다’는 말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살림살이는 못 배우고 힘없는 여자들이 밖에 나가서 돈을 벌 수 없으니까 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저는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생을 살림살이 하시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께서 알뜰살뜰 보살펴 주시는 사람은 번듯한 인생을 살아갑니다. 

우리 자신은 바퀴벌레처럼 무지합니다. 예를 들어, 오늘 이 주식을 사면 내일은 비싼 값에 팔 수 있는지, 오늘은 이 땅을 구매하면 내일은 안락한 삶을 살 수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내일은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밖에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살리십니다. 날마다 말씀으로 영혼을 깨워주시고, 일하러 나가도록 엉덩이를 토닥여 주십니다. 열심히 주님의 뜻을 따르려고 할 때는 머리도 쓰다듬어 주시고, 그래서 제가 머리가 없습니다. 

주님은 삼중으로 그렇게 하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할 일은 하나뿐입니다. 

오늘 본문 석 절에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너희 안에 계시면 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도록 하는 일입니다.

 

중소기업을 돕는 노란우산이 있고, 혼자 사는 어린이를 위해서 초록우산이 있듯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삼중으로 도우시는 하나님이 있습니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 안에 들어와 계셔서 우리 인생을 살림살이 해 주시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 방법은 하루 종일 말씀을 붙들고, 찬양하며 살아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이 교만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지 않고 딴 일하며 시간을 많이 보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절실한 만큼 주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시간은 비례합니다.

우리는 마치 푸바오와 같습니다. 얼마 전 중국으로 간 판다 곰 푸바오를 아시죠?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까? 그런데 푸바오가 솔직히 귀여운 거 말고는 뭐가 있습니까? 너무 귀여워서 전 국민이 푸바오 푸바오 하다가 중국 가니까 6천 명이 눈물로 환송식을 해 줬다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푸바오가 그 귀여움을 유지해서 전 국민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 하루 종일 한 일이 있습니다. 하루 종일 대나무를 먹는 일이 그 일입니다. 판다는 곰과이기 때문에 내장과 위가 육식동물과 같답니다. 그런데 판더는 고기를 안 먹죠. 식성이 초식동물입니다. 고기를 먹으면 그럴 필요가 없는데 대나무만 먹으니 조금 먹고 말면 힘이 빠져서 살 수 없습니다. 그 귀여운 얼굴에 살이 쪽 빠진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러면 그 얼굴에 살이 빠지면 스크림이 되는 거죠.

 

판다는 그래서 하루 종일 대나무를 씹습니다. 자신의 육체 구조와는 맞지 않는 대나무를 먹거리로 삼은 덕분에 하루 종일 먹지 않으면 안 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결국 수많은 사람들이 판다를 사랑하고 돌보는 결과를 낳은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죄인의 유전자를 물려받고 태어나서 죽을 몸으로 살다가 죽습니다. 그런 우리가 살려고 우리 몸에 맞지 않는 말씀을 먹으려고 합니다. 그러니 말씀을 읽기가 싫고, 읽어도 무슨 뜻인지 모르겠고 마치 소화가 안 되는 음식을 먹듯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먹어야 합니다. 판다처럼 씹고 뜯고 맛보고, 뼈다귀를 문 개처럼 핥고 붙들고 갉아대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새김질하는 동물 그러니까 소는 정하다고 하고, 새김질을 하지 않는 동물 그러니까 돼지는 부정하다고 하신 것입니다. 

소는 풀을 먹지만 소화가 잘 안 됩니다. 그러니 하루 종일 위에서 다시 꺼내어 새김질을 하면서 소화를 시킵니다. 그러나 돼지는 무엇이든 먹지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하루 종일 되새김 하라는 뜻으로 애굽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소와 돼지를 구분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의미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늘 묵상하고 되새김질을 하는 것은 곧 하나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 인생을 살림살이 해 주시는 결과를 낳습니다. 

커피가 그렇잖아요? 커피는 커피콩을 먹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콩을 그냥 먹을 수는 없어서 볶습니다. 볶아서 말린 후에 가루로 만듭니다. 가루를 또 그냥 먹습니까? 종이나 금속으로 된 여과지로 아무 미세하게 거릅니다. 거르는 과정에서 향기도 나고 커피콩의 기름 성분은 크레마가 됩니다. 그러면서 결국 커피콩은 아주 미세한 가루가 되어서 사람 몸에 들어가면 카페인이 몸을 깨우고 상쾌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시는 것도 이와 비슷합니다. 온 우주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 안에 들어오실 수 있습니까? 그것은 말씀이라는 아주 미세하고도 우리 심령에 들어올 수 있는 형태를 통해서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직접 들어오실 수는 없어요. 그러면 우리는 주님의 엄청난 빛에 눈이 멀고, 압사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커피콩이 미세한 가루가 되고 향기가 되고, 카페인이 되어 사람 몸에 효과를 일으키듯이 말씀이 되시면 우리 안에 들어오게 되고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하루 분량의 말씀을 읽는 중에 있습니다. 그 말씀을 읽고 하루 종일 되새김질을 하는 일은 하나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역사하는 결과를 낳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러한 삶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살려주시는 간증들을 서로 나누며 세상에 전하는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맥체인 성경읽기 Plan 5.20(월) 민29 | 시73 | 사21 | 벧후2 5.21(화) 민30 | 시74 | 사22 | 벧후3 5.22(수) 민31 | 시75 _76| 사23 | 요일1 5.23(목) 민32 | 시77 | 사24 | 요일2 5.24(금) 민33 | 시78:1~37 | 사25 | 요일3 5.25(토) 민34 | 시78:38~72 | 사26 | 요일4 5.26(주일) 민35 | 시79 | 사27 | 요일5 5.27(월) 민36 | 시80 | 사28 | 요이1 5.28(화) 신1 | 시81~82 | 사29 | 요삼1 5.29(수) 신2 | 시83~84 | 사30 | 유1 5.30(목) 신3 | 시85 | 사31 | 계1 5.31(금) 신4 | 시86~87 | 사32 | 계2 6.1(토) 신5 | 시88 | 사33 | 계3 6.2(주일) 신6 | 시89 | 사34 | 계4 6.3(월) 신7 | 시90 | 사35 | 계5 6.4(화) 신8 | 시91 | 사36 | 계6 6.5(수) 신9 | 시92~93 | 사37 | 계7 6.6(목) 신10 | 시94 | 사38 | 계8 6.7(금) 신11 | 시95~96 | 사39 | 계9 6.8(토) 신12 | 시97~98 | 사40 | 계10 6.9(주일) 신13~14 | 시99~101 | 사41 | 계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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